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Finally, brothers and sist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Philippians 4:8)
✅ 시각의 힘
시각이 우리의 현실을 형성한다. 세리 마태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각을 예로 들어 보자.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세리들은 매국노요,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로마제국의 부역자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의 직업과 대외적인 이미지를 넘어 제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셨다. 예수님은 상황과 사람을 다르게 보셨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무의식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생각이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의식적으로 옳은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시각을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희망적 사고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지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고 부른다. 이는 자신이 경험하는 것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능력이다.
과학자들이 온갖 뇌 영상 연구를 해 온 결과, 일관된 신경 활성화 패턴을 발견했다. 즉,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바꾸기로 결심하면 인지적 통제에 관여하는 전두엽 부분에서 활동이 증가하고, 뇌의 감정 처리 영역에서는 활동이 줄어든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로 결정하면 뇌가 우리를 돕기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보다 좋고 경건한 시각을 선택함으로써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뉴욕주립대학교 버팔로캠퍼스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그룹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음 문장을 다섯 번 완성하게 했다. “내가 _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삶에 대한 만족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두 번째 그룹 참가자들에게는 다음 문장을 다섯 번 완성하게 했다. “내가 _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결과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1] 이 실험 참가자들의 삶이 실제로 변했을까? 아니다. 변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당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교회의 문제점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당신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는 전지 전능하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 하나님은 실패에서 승리를 거두시고, 악에서 선을 끌어내시며,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물론 사실이다.우리는 믿음 충만하고, 생명을 주고, 사랑을 낳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낳는 시각을 선택할 수 있다. 단, 여기서 인지의 법칙을 기억하자. 우리가 원하는 시각을 품을지는 우리의 선택만큼이나 우리의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 –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 카일 아이들먼 지음 / 정성묵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