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시편 68:19)
✅ 사랑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훈련이란 인간의 정신적 발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하겠다. 지금부터 훈련을 하도록 격려해 주는 동기는 과연 무엇이며, 또 무엇이 그것을 추진해 나가게끔 힘을 주는가 살펴 보겠다. 나는 그 힘의 정체를 사랑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사랑을 아주 신비로운 그 무엇으로 여기면서 고찰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도는 실제적으로는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알아내지 못할 그 무엇에 관한 고찰이다.
사랑은 너무나 크고 깊어서 참으로 이해될 수도, 측량될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파헤쳐 보려는 것은 이와 같은 시도가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시도가 어떤 면에 있어서는 부적절하리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사랑은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을 설명해 보려는 부단한
노력의 일환으로 에로스(eros), 필리아(philla), 아가페(agape), 완전한 사랑과 불완전한 사랑등과 같은 다양한 범주들로 나누기도 한다. 나는 여기에서 이런 다양한 범주들을 무시하고, 다소 부적절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사랑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말이다.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내린 정의를 잠시만 변명해 보자.
첫째로 그것은 목적론적인 정의이다. 정신적 성장이 그 목적이다. 과학자들은 목적론적 정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미리부터 이런 결론을 예상하면서 사랑의 정의를 탐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임상적 경험을 세밀히 관찰하고 더불어 자기 관찰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정신과의 임상 경험에서 사랑의 정의란 상당히 중요한 의미로 취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사랑의 정의에 관해서 매우 혼란을 느끼기 때 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소심한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때까지 학교 버스를 타고 다니지 못하게 했답니다. 어머니에게 아무리 사정을 해도 학교 버스를 못 타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다칠까 봐 두려워 매일 차로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다시 집으로 데려오느라고 퍽이나 힘드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했답니다.”
나는 그 청년의 소심함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사랑보다 는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고, 사랑인 것처럼 보이는 그 행동들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 주어야만 했다. 이때부터 나는 사랑으로 가득 찬 행동과 사랑이 아닌 행동을 구분하여 모아 보았다.
이 둘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나 사랑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의식적 목적과 무의식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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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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