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8)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6:4)
✅ 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
삶은 고해(苦海)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苦海)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때,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문제만 가장 특별하다고 믿으며, 왜 다른 사람들은 당하지 않는데 자신과 가족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만 이같이 고통스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불평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리라 믿는다.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통스런 삶의 문제들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걸까? 아니면 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삶의 지혜들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훈련이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방법중의 하나다. 이런 과정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미약한 배움으로는 부분적인 문제밖에 해결하지 못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배움만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삶의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하는 과정은 삶 그 자체의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삶의 문제들은 우리를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거나 외롭고 슬프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죄책감, 분노, 두려움, 초조, 절망 속으로 던져 넣기도 한다. 삶의 문제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육체적으로 불편하고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불편하고 아프게 한다. 우리가 삶의 문제들을 문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듯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므로 삶이란 항상 어렵고, 기쁨만큼이나 많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전체적인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의 승패는 그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들은 우리에게 용기와 슬기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없던 용기와 슬기를 만들어내게까지 한다. 영적으로 정신적인 성장은 오직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성장을 자극하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도전적인 태도를 격려해야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일부러 문제를 내주고 풀어 보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쳐 해결해 보려고 애쓰는 가운데 배우게 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 대로 “고통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들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환영하며, 더 나아가서는 문제가 주는 고통까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들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 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 한다. 심지어는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약물을 먹고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 나려고만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 태도가 바로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드물며 누구나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문제와 고통스러운 것을 피해 쉬운 길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건전하고도 지각있는 길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환상에만 안주하여 현실을 도피하기도 한다. 칼 융(Carl G. Jung)은 이것을 “노이로제(신경증)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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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
바르트부르크 성에서의 루터
1501년 대학 진학을 위해 에어푸르트로 떠날 때까지 소년 루터의 지성과 영성의 성장에 자양분을 공급해 준 어머니의 도시 아이제나흐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어느덧 장년이 된 루터의 삶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1517년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미 독일과 유럽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Karl V)는 종교 개혁의 기치를 올린 루터의 주장을 심의하기 위해 1521년 보름스에서 제국의회(Reichstag zu Worms)를 소집하고 루터를 소환했다. 보름스의 제국의회에서 자신의 신학적 주장을 꺾지 않은 루터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는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사라졌고 한동안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루터를 지지했던 작센의 선제후 현자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 der Weise von Sachsen)가 위장납치극을 벌여 루터를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시켰던 것이다.
그곳에서 루터는 약 10개월간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살을 뺏고 수염을 길렀으며 융커 외르크(Junker Jörg)란 이름의 기사신분으로 철저하게 위장한 채 생활하였다. 하지만 수도사로 살던 루터에게 기사로 위장 한채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편한 복장과 승마와 사냥을 비롯한 기사의 생활은 그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었다. 그는 육체적 질병과의 싸움뿐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였다. 지금도 루터의 방에 남아 있는 마귀에 대항하기 위해 뿌린 잉크 자국을 보면 영적 싸움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다. 후에 슈팔라틴(Georg Spalatin)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시련을 주셨고 그로 인해 십자가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다”라고 토로한 것이 그의 상황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바르트부르크에서도 루터는 개혁자였다. 신원이 발각될 위험과 심신의 고초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서신교환을 쉬지 않았다. 비텐베 르크에 남아 있는 동료 카를슈타트(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가 수도원개혁과 성직자의 혼인 문제 등에 대해 쓴 논문들에 대해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이 보내온 종교개혁의 신학을 최초로 정리한 신학총론 (Loci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의 초고도 검토했다. 숨어 있는 동안에도 종교개혁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루터를 말한다 루터가 말한다, 독일선교사 함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