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시편 119:17-18)
✅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를 도발하고 자극할 때, 우리는 보통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문제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분노의 강도를 높이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은혜와 연민으로 반응하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여인과 여인의 사연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경험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잘 아셨다. 그녀가 왜 자신 같은 남성에게 공격적이고 불신을 보이는지를 이해하셨다. 최악부터 생각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세상에서 연민을 선택하는 것은 파격적인 행동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화나게 해도 우리는 연민으로 반응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상처보다 ‘상대방’의 상처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이 우리를 화나게 할 때 고려해야 할 좋은 질문은 ‘상대방은 어떤 상황인가?’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보라. 그러면 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내 경험상, 어떤 사람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궁금해할수록, 그 사람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면 분노 대신 연민을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를 버리고 사랑으로 나아가다
분노의 생각 패턴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나는 어느 화요일 아침,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전날 나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이메일들에 답장하느라 몇 시간을 보낸 상태였다. 목사답게 온화하게 답변하려고 애썼지만,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달았고, 친절함은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이메일을 열어 보니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한 교인에게서 통렬한 비판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독했다. 내 리더십 스타일에서 옷차림까지 모든 것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읽다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항변의 이메일을 보내는 대신, 이 교인의 전화번호를 찾아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내 안에서 신경 전달 물질들이 폭발하면서 콧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에게 쏘아붙일 말을 준비했다. 나는 이 교인을 깜짝 놀라게 할 심산으로 일부러 교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지치고 쉰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했다. “안녕하세요. 교회에서 웬일이죠?” 내가 잠시 침묵하자 남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제 아들 문제로 전화하셨나요?”
순간 내 마음이 바뀌었다. 내 생각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선생님이 보내신 이메일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아드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그 애는 내슈빌의 한 병원에 있어요. 약물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입원 치료 시설로 이송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고 치료비도 없어서 걱정이에요.”
나는 교회에서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고, 몇 분간 이야기를 나눈 뒤에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로 기도하는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의와 교만에서 비롯한 나의 분노가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워하던 한 아버지가 고통을 쏟아 내듯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은 내가 사로잡혀 있던 분노의 패턴에 나를 묶어 두고, 내 생각을 지배했다. 나는 내 감정에만 너무 집중해 있었다. 노하기를 빨리했다. 그래서 내가 애초에 목사가 된 이유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사람들이 가장 어두운 순간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돕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목사가 된 이유였다. –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 카일 아이들먼 지음 / 정성묵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