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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 욥기 22:24-25)

✅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2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정신치료나 안정된 결혼처럼 건설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애착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참사랑은 애착이나 사랑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실존하는 것이다. 물론 애착이나 사랑의 느낌을 가지고 하는 사랑이 훨씬 재미있고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애착과 사랑의 느낌 없이도 사랑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구별을 하는 데 있어 열쇠가 되는 말이 바로 ‘의지’ 이다.

나는 사랑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 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적이기보다는 의지적인 것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사랑하는 느낌이 없어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은 있을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실천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느낌으로 행동하는 것을 때로는 억제할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아주 매력적인 여성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지만, 외도를 하는 것은 내 결혼생활에 파괴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소리를 내서든지 또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타이를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서 나는 치료에 성공할 것 같은 그 환자를 거절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환자들은 그리 매력적이지도 못하고 치료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치료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을지 모르지만 사랑할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할 수 있는 내 능력을 누구에게 집중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하고, 그 사람을 향해서 사랑의 의지를 집중시켜야 한다. 참사랑은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압도되는 그러한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있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정인 것이다.

사랑과 사랑의 느낌을 혼동하는 보통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자기 기만을 하게 된다. 한 알콜중독자 남자가, 당장에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돌봐야만 할 절실한 상태에 있는데도 가족에게 가볼 생각은 않으면서 술집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술집 주인에게 “나는 정말 내 가족을 사랑한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자. 이처럼 아이들을 대체로 소홀하게 돌보는 사람들도 자식들을 매우 사랑하는 부모라고 자처한다.

이렇게 참사랑과, 단지 사랑의 느낌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하는 자기 위안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 속에 사랑한다는 느낌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행동 속에서 사랑의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사랑이란 의지적인 행동이며 그것은 사랑의 순간적인 느낌이나 단순한 애착의 단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랑이란 행동 하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선과 악처럼 객관적인 것이지 순수하게 주관적인 현상이 아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