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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내줄 시간이 없고 그럴 마음도 없으면, 아이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 없기에 언제 부모의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게 되고, 또 그런 도움을 원하는 아이들의 무의식적인 표현을 부모가 제대로 알아차릴 수도 없게 된다. 아이들을 단단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뼈저리게 의식하면서도 우리는 “오늘은 애들을 봐줄 기력이 없어.” 하며 저희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들이 잘못되면 그때서야 부모들은 화를 내며 아이들을 가혹하게 야단치게 된다. 문제가 어떤 것인지 알아볼 여가도 없고, 그 문제 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훈련시키려고 덤비게 되는 것이다.

보통 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서 돌봐 주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조심스럽게 달래고 염려해 주며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순순히 호응을 해서 부모들이 장려하는 것이나 질책하는 것을 듣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여 그대로 따라 줄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케이크를 어떻게 먹는가도 살펴보고 어떻게 공부하는가도 관찰해 보며, 언제 살짝 거짓말하는가, 언제 문제들 에 부딪치고도 해결하지 않고 도피하는가도 알게 된다.

그런 부모들은 시간을 내서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사소한 문제들을 고쳐 주기도 하고, 문제에 따라 대응해서 약간 조이기도 하고 느슨히 풀어 놓아 주기도 하며, 얘기를 해주든지, 감싸 안아 주기도 하고 키스해 주기도 하고, 훈계를 하거나 등을 툭툭 쳐 격려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들의 훈육방식은 사랑이 없는 부모 들의 훈육방식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낫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넘쳐나는 사랑으로 틈틈이 아이들을 관찰하여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볼 때, 부모는 진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괴로움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이런 것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자기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당장에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않을 지라도 마음 속 깊이에서 부모가 얼마나 함께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배우게 된다. 그들은 “우리 부모가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당해 준다면 고통이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고 나도 기꺼이 그 고통을 견뎌 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훈련의 시작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보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얼마만큼 귀중하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 아직도 가야 할길, 스캇 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