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 두려워 말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두려움의 문제만 없다면 인생은 살아볼만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물론 위험을 방지할 수 있게 하는 바람직한 두려움도 있다. 이런 두려움은 우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이런 두려움은 거룩한 외경심이며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두려움이 있다. 바로 사단이 주는 두려움이다. 사단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기운을 쇠하게 하는 두려움을 전해준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능력과 사랑과 건강한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나처럼 불안증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불안이 동반하는 걱정과 스트레스 그리고 심적 부담감 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항상 두려움이 앞서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또 아무리 애써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매순간 앞날의 일을 걱정 하느라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한다. “만약…하면 어쩌지?”는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만약 청구서를 갚지 못하면 어쩌지?”, “만약 우리 애가 다치면 어쩌지?” “만약 남편이 실직하면 어쩌지?”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들만 예상하며 사는 사람들은 매일 불행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살아 간다.
이 세상에는 연일 심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깨어서 그런 일들을 대비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를 제압하려는 두려움에 대처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두려움을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실 두려움은 영이다. 나는 사단이 가장 애용하는 도구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단은 그 도구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는 일을 아주 즐거워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고,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다고 속삭인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우리를 위축시키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 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사단은 성경을 믿고 심령이 뜨거워져 두려움이 없어진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무서워한다. 하나님은 인생이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인생은 문제와 도전으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혹은 두려움에 굴복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시편 23장 4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 왕도 험한 골짜기를 지나는 인생을 살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결코 두려운 마음을 주지 않으신다. 두려운 마음은 교활한 우리의 영적 대적이 주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고 벌하기 원하신다고 생각하면서 사단이 주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마음의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두려움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영이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두려움을 향해 떠나라고 명해야 만 한다. 또다시 두려움이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 믿음의 병기를 들고 담대히 맞서 싸우라.
-마음훈련, 조이스 마이어✅







